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진보가 아니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 & 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

2023. 4. 3. 20:06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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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진보가 아니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 & 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

우리는 가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말에 솔깃해진다. 문명을 되돌리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 그러나, 어린 아이에게 “동굴에서 살래, 아파트에서 살래?”라고 물으며, 체험을 시켜보면, 아이는 아파트를 선택할 것이다. 동굴은 춥고, 어두우며, 습기차고, 벌레가 있다. 우리는 자연을 극복하고 아파트를 선택해왔다. 자연주의의 대표적 명저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도 완전한 자급 자족의 삶을 누리지 못했다. 빨래는 어머니가 해주었으며, 끼니도 이웃의 도움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나혼자, 우리끼리만, 우리민족끼리만 살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환상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낭만적인 꿈은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실패한다. 올해 오스카 상 감독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노매드랜드는 집에 정착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린다. 방랑하며 채집과 수렵을 하던 시대로 돌아가는 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결코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자연을 가끔 즐기는 것은 좋지만, 집없이 평생을 사는 것은 피곤하다. 인류가 정착을 하고, 도시를 건설한 것은 진화적 행동이고, 발전이었으며, 진보였다. 인류의 역사는 자연으로부터 벗어나온 역사이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에덴동산의 벌거벗은 몸으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몸을 보호하고 꾸미는 옷과 장식을 개발하는 것이 진보다. 의상학, 건축학, 식품영양학은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더 멀리 떠나게 하는 진보적 학문이다. 더 나아가 현실세계에 증강현실을 결합하는 메타버스를 만들고, 메타버스에서 활동하는 나의 아바타, 부캐를 만드는 것이 차라리 진보적 행동이다.
화폐의 탈중앙화라는 매력적 구호와 함께 등장한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나온지 10여년이 지난 지금, 냉정하게 판단해보면, 화폐의 탈중앙화는 진보가 아니다. 인류의 시초에는 화폐가 없었다. 인류는 화폐를 개발하게 되었고, 거래 당사자간 분쟁을 줄이기 위해 표준화되어왔을 것이며, 신뢰 획득을 위해 권위있는 기구가 보증했을 것이다. 권위 기구는 부족장이 지배하다, 왕이 지배하게 되었으며, 현대엔 국민이 주인이 되어 법치와 선거로 관리하는 민주 공화국가로 진보해왔다. 민주화는 탈중앙화된 무정부국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직화하는 것이며, 자연의 약육강식에서 벗어나 약자를 보호하고, 구성원의 복지, 조직의 성과를 창출하는 원리를 연구해 온 것이 정치학, 행정학, 경영학이다.
공산주의는 어떤가? “처음으로 돌아가자. 부의 분배를 원점으로 돌리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나게 하자”는 구호는 매력적이었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도 노력하지 않는 결과가 도출되었고, 소수의 공산당원이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대다수의 민중들은 억압과 가난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공산국가는 무너지고 민주화되었다.
비트코인, 블록체인이 주장했던 탈중앙화도 결국 자연으로,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일견 매력적이어서, 지난 10여년간 지켜보았지만, 구체적인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전세계의 어떤 대학교나 연구소의 엘리트 학자들도 이를 인정하고 이의 효용을 증명하는 고급의 보고서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돌, 조개, 동전, 지폐로 진화해온 화폐가 디지털 코인으로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혁신일 수 있으나, 그것이 탈중앙화를 위한 암호화폐여야 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가설이기는 하나 진보가 아니다. 사회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자연의 법칙이 약육강식으로 잔인하다면, 인간 사회의 제도는 그렇게 잔인하면 안된다. 잔인하지 않기 위해서는 탈중앙화하면 안된다. 탈중앙화는 진보가 아니다. 탈중앙화하면 결국 잔인한 지배자가 나오게 되어있다. 비트코인을 창시한 나카모토 사토시는 잘못이 없다. 그는 생시몽과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 같은 사람인 것이다. 생시몽 이후로 오랫동안 공산주의의 유령은 떠돌았고, 임시적으로 창궐하였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현재의 암호화폐 광풍과 유사하다.
사람같은 인공지능을 만드는 시도 역시 진보적이지 않다. 사람과는 달리 더 합리적인, 사람을 위한, 인간과 가깝지 않은 인공 지능체를 만드는 것이 진보다. 자연의 하나인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은 진보가 아니다. 탈중앙화 암호화폐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시도와 유사하기 때문에 문명이나 진보가 아니며,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지역화폐도 유사한 운명을 갖는다. 교환범위가 넓은 화폐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화폐 진보의 역사이기 때문에, 그 진보의 방향을 거스르는 지역화폐는 이름만 화폐일뿐, 지역 납세자의 희생없이는 유지되지 못하는 정책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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